권력의 감시가 교차하던 서울 중심의 한 장소
서울 종로 한복판, 지금은 번화한 도심의 일상이 흐르는 자리였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이곳은 통제와 감시, 권력의 작동이 집중되던 장소였습니다. 바로 종로경찰서 옛터 이야기입니다. 종로경찰서는 서울의 행정·정치 중심부에 위치했던 만큼 단순한 지역 경찰서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치안 통제 전략의 핵심 지점으로 활용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서울 치안의 상징적인 거점으로 기능하며 근현대사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여러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현재는 경찰서 본관이 철거되어 더 이상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그 자리에 남은 기억들은 서울이 지나온 경찰권력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단순한 건물의 흥망이 아니라, 이 공간은 식민지 통치와 해방, 군사정권과 민주화 과정 속에서 경찰 조직이 어떻게 변모하고 작동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역사 현장입니다. 비록 오늘날의 종로에는 고층빌딩과 쇼핑센터들이 들어서 있지만, 우리가 지나치는 이 도심의 거리에는 여전히 감춰진 과거의 권력 작동 구조가 층층이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통제 하에 놓인 경찰력의 핵심 축
일제는 조선을 식민 통치하면서 가장 먼저 치안 조직을 정비했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것이 조선총독부 경무국이었고, 이와 연결된 지방 경찰 조직들이 서울을 포함한 전국에 촘촘하게 배치되었습니다. 종로경찰서는 이 체계의 상징적인 말단이자, 동시에 지휘와 감시 기능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전초기지였습니다. 당시 종로는 조선인의 활동이 가장 밀집된 지역이었고, 독립운동의 거점 또한 종로 일대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 당국은 이곳의 통제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종로경찰서에서는 독립운동 혐의자들에 대한 고문과 감시, 검거 활동이 집요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심문실이 있던 건물 지하에서는 수많은 운동가들이 모진 고문을 견디며 버텨야 했고, 그 기록은 해방 후에도 증언과 문서로 남았습니다. 단순한 경찰 업무를 넘어, 종로경찰서는 일제의 식민 통치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물리적 거점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능은 단순히 공공기관의 행정 수행이 아니라, 식민 권력의 감시와 억압이라는 구조적 작용이 구체적으로 작동하던 공간으로 종로경찰서를 역사적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오늘날 이 자리에 세워진 상업 시설이나 도심 인프라와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었던 셈입니다.
해방 이후, 치안 권력의 계승과 군사정권기의 종로
광복 이후 종로경찰서는 해방된 서울에서 새로운 치안 체계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전환되었지만, 그 속성은 급변하는 정치 상황에 따라 복잡하게 얽히게 됩니다. 미군정기에는 일본 경찰 출신 인력들이 여전히 일부 잔류한 채 경찰력을 유지하였고, 이후 이승만 정부 하에서는 반공 체제가 강화되며 경찰의 권력화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종로경찰서는 단순한 구청 단위 경찰서라기보다는, 정치와 이념이 충돌하던 서울 한복판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군사정권 하에서 종로경찰서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진압하고 정치범을 감시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가에서 발생한 시위가 종로 일대로 이어질 때마다 경찰력은 종로경찰서를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중앙청이나 청와대와 인접한 이곳은 그야말로 권력의 울타리 역할을 했습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서울에서 벌어진 학생운동과 도심 시위 역시 종로경찰서의 반응과 대응 방식에 따라 전국적 여론이 요동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종로경찰서는 단순한 지역 경찰서가 아닌, 정권의 눈과 귀가 되어 정보를 수집하고 대응 전략을 실행하는 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서울 도심 재편 속의 철거,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기억
199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서울시의 도심 재정비 사업은 종로 일대의 대대적인 공간 개편을 불러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종로경찰서도 물리적 철거의 대상이 되었고, 그 기능은 인근의 종암경찰서 등 다른 기관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자리에 대형 상업시설과 고층빌딩이 들어서 경찰서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공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과 자료들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으며, 서울의 경찰 행정사를 이야기할 때 종로경찰서는 빠질 수 없는 지점으로 남습니다.
철거 이후에도 이곳은 여러 다큐멘터리, 시민단체, 역사기행 콘텐츠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을 보존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종로경찰서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경찰 조직 내부에서도 과거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한 성찰이 진행된 바 있습니다.
단지 오래된 건물이 사라졌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던 역사적 맥락과 기능의 복원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장소는 여전히 복원과 기억의 대상입니다.
일제 감시와 민주화 억압, 교차된 시간의 흔적
종로경찰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두 개의 강력한 통제 체제가 교차합니다. 하나는 식민지 치안 시스템, 또 하나는 군사정권 하의 정보통제 체제입니다. 이 두 시기 모두에서 종로경찰서는 단순한 범죄 예방 기관을 넘어 권력의 손발로서 작동했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공간이 서로 다른 정치 체제 아래 유사한 방식으로 기능했다는 점은, 장소의 기억이 단절되지 않고 연속성을 가지며 축적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경찰이라는 조직이 권력화되었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억압의 구조는, 종로경찰서를 통해 구체적인 장소의 이미지로 되살아납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장소성을 살려 시민 기억 공간 혹은 경찰사 박물관으로 재구성하려는 논의도 있었지만,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상업적 가치가 우선시되는 도심 중심부에서, 과거의 감시와 통제의 기억은 점점 묻히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심 한복판의 잊힌 역사, 다시 기억해야 할 이유
오늘날 종로 한복판을 걷는 많은 이들은, 자신이 지나고 있는 길 아래 어떤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는지 모른 채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옛터는 단순한 건물 철거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가 겪어온 치안 체계의 역사, 권력과 시민의 관계, 그리고 통제와 저항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품고 있는 공간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장소의 맥락을 다시 되짚고, 잊히지 않도록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서울의 숨은 역사 장소를 복원한다는 것은 단지 공간을 다시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곳에 얽힌 기억을 회복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종로경찰서 옛터는 바로 그 출발점 중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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