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3 3

서울 신교동 가옥, 일제강점기 민간 건축의 살아 있는 표본

도심 한복판에 남겨진 살아 있는 근대 유산서울 종로구 신교동 골목 어귀, 현대식 건물들 사이로 유독 낮고 기와 얹힌 한옥 한 채가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에 지어진 이 가옥은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보존 상태가 우수한 민간 근대한옥으로, 21세기 도심 속에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희귀한 유산입니다. 이 집은 과거 한양 도성 외곽에서 시작된 도시 확장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서울의 생활 문화와 도시 변천사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장소입니다.일반적으로 서울의 일제강점기 유산이라 하면 정부청사, 관공서, 철도역처럼 국가나 식민권력과 연결된 건물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신교동 가옥은 그와는 결이 다릅니다. 이곳은 당시 민간 중산층 혹은 부유층 가정의 생활이 그..

서울 풍납토성, 조선 이전 백제의 도읍이 남긴 도성의 기원

서울이 조선의 수도만은 아니었다서울은 흔히 조선의 수도, 즉 한양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 시대인 백제 초기에 이미 이곳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유적이 바로 풍납토성입니다. 풍납토성은 서울 송파구 풍납동 일대에 위치한 백제 초기의 도성 유적으로, 약 기원전 1세기경부터 4세기경까지 백제의 왕성과 정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추정됩니다. 일반적으로 한성백제 시기라 불리는 이 시기의 핵심 유적지로, 서울의 역사 깊이를 조선보다 수백 년 앞당겨 보여주는 장소입니다.풍납토성은 현재 도심 속에 남아 있는 대규모 성곽 유적 중 하나이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그 존재와 가치를 잘 알지 못합니다. 학교 근처의 흙 둔덕, 아파트 단지 옆 언덕으로만 인식되기 쉽지만, 이곳은 실제..

광희문, 질병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도성의 출입구

광희문은 왜 ‘질병과 죽음의 문’이었는가서울 중구 장충단공원 인근, 비교적 한적한 도로변에 자리한 작은 석문 하나가 있습니다. 이름은 광희문(光熙門). 외형만 보면 남대문이나 동대문 같은 위용은 없고, 규모도 한참 작지만, 이 문이 조선시대 한양 도성에서 맡았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광희문은 흔히 ‘소문(小門)’이라고 불렸던 도성의 부속 문 중 하나로, 본래 동남쪽 성곽 일부에 설치된 보조 출입구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질병과 죽음을 도시 밖으로 내보내는 문으로 기능했습니다.조선은 질병, 특히 전염병에 대해 매우 엄격한 통제 정책을 운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환자와 시신의 도성 내 체류는 금지 대상이었으며, 반드시 도성 밖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광희문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환자 수송로, 시신 반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