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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보제원 터, 조선의 환자와 가난한 자가 모였던 공간

보제원이 있었던 자리, 오늘날 숭인동이 품은 조선의 인도주의 흔적서울 종로구 숭인동 일대는 지금은 고층 아파트와 시장, 도심 교통이 뒤섞인 일상적인 동네로 보이지만, 조선 시대 이곳은 나라가 직접 운영하던 구휼기관 '보제원(普濟院)'이 자리했던 곳이었습니다. '널리(普) 구제(濟)한다(院)'는 이름 그대로, 보제원은 질병, 빈곤, 사고 등으로 사회의 가장 아래에 놓였던 사람들을 위한 공공 보호시설이자, 국가가 책임을 지는 최초의 복지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당시 조선 사회에서 관료제는 백성을 다스리는 도구였지만, 동시에 유교적 통치 이념 아래 백성을 보호하고 양육할 책임도 함께 강조되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제원은 굶주리거나 다친 백성, 외부에서 유입된 병자, 사고로 가족을 잃은 자들에게 숙식과 ..

한양 도성의 북동 끝자락, 정릉 성곽길을 따라 걷는 방어의 흔적

왕릉과 도성 방어선이 만나는 이례적인 지점, 정릉서울 성북구 정릉동은 조선 왕조의 첫 번째 왕비, 신덕왕후가 묻힌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이 단지 조선의 왕릉이 위치한 곳이라는 사실만 기억된다면 절반의 역사만 알고 있는 셈입니다. 정릉은 조선 수도 한양을 둘러싼 도성 방어 체계의 북동쪽 말단에 해당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특히 북악산에서 이어지는 도성 성곽의 외곽 경계선이 이곳을 지나며, ‘정릉 성곽길’이라 불리는 산책로는 과거 방어선이자 감시로 활용되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정릉이라는 공간은 왕릉의 신성성과 도성의 실용성이 충돌하거나 공존했던 지역으로도 주목할 만합니다. 조선 왕릉은 대체로 도성 외곽에 위치했으나, 대부분 성곽선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조성되었습니다...

동망봉, 조선의 서울 감시망이 시작된 봉수대

감춰진 서울의 시작점, 동망봉이라는 이름의 의미서울 동대문구 이문동과 휘경동 사이, 흔히 지나치기 쉬운 작은 언덕 하나가 있습니다. 높지도 않고, 별다른 표지판도 없으며, 일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조차 그 이름이 생소할 수 있는 이곳은 바로 ‘동망봉(東望峰)’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야산이 아닙니다. 조선 시대, 이곳은 서울 도성 바깥을 감시하고, 전국으로부터 올라오는 정보를 가장 먼저 확인하던 봉수대이자, 군사 감시소였습니다.‘동망봉’이라는 명칭은 말 그대로 ‘동쪽을 바라보는 봉우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은 사대문을 중심으로 내부와 외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도시 구조였으며, 외부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동망봉은 한양 도성의 동쪽 바깥에 위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