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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 벽수산 탄약고 터, 냉전의 기억이 스며든 은평의 뒷산

은평구 벽수산 자락, 낯선 철문이 지닌 군사 유산의 흔적서울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의 경계에 자리한 벽수산은, 도심에서 멀지 않지만 의외로 조용하고 사람의 발길이 뜸한 뒷산 중 하나입니다. 이 산을 따라 걷다 보면, 다른 산들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녹슨 철문, 콘크리트 구조물, 잡풀 속에 숨은 울타리 등 일상적인 등산로에서는 보기 어려운 흔적들입니다. 겉보기에는 오래된 창고 같지만, 이곳은 한때 군사적으로 철저히 통제되었던 구 벽수산 탄약고 터입니다. 지도상에도 표기되지 않았던 이 시설은, 한국전쟁 이후 냉전기의 긴장 속에서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군사시설 중 하나였습니다. 오랫동안 비공개 지역으로 남아 있었던 탓에, 주민들에게조차 존재 이유와 역할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곳은..

절두산 순교성지, 한강변에서 지켜낸 신앙과 피의 기억

한강 너머 절벽 위, 잊히지 않는 고통의 흔적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강을 따라 남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평범한 도시 풍경 사이로 뾰족한 첨탑 하나가 조용히 솟아 있습니다. 여기는 절두산 순교성지, 조선 후기의 박해사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오늘날에는 성당과 순교자 기념관, 박물관이 조성되어 있어 신자들이나 역사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드물지 않지만, 서울의 수많은 역사 공간 중에서도 이처럼 깊고 조용한 상처를 품은 장소는 많지 않습니다. ‘절두산(切頭山)’이라는 명칭부터가 비극을 내포합니다. 이름 그대로 ‘목이 잘리는 산’이라는 뜻을 가진 이 지명은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된 장소였다는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한강 절벽 위라는 위치는 신자들의 마지막 길이었고, 도시의 ..

낙원동 악기골목, 음악과 저항이 공존하던 도시의 또 다른 지하실

단순한 악기상가가 아닌 문화적 교차점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낙원상가’는 흔히 악기 상가의 집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곳을 찾으면 건반, 기타, 관악기, 전통악기까지 모든 악기를 만나볼 수 있으며, 음악을 배우는 이들에게는 서울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이 공간은 단지 악기를 사고파는 시장의 기능에 머무르지 않습니다.1969년 준공된 낙원상가는 그 자체로 문화 공간의 실험장이자, 예술과 저항이 교차하던 장소였습니다. 지하에는 연습실과 작업실이 밀집했고, 상가 외부에는 작곡가, 연주자, 제작자, 심지어 당시의 저항적 젊은 예술가들까지 드나들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부터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이 혼재하던 ‘문화의 충돌지대’였습니다.지금은 상가로서만 기억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