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벽수산 자락, 낯선 철문이 지닌 군사 유산의 흔적
서울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의 경계에 자리한 벽수산은, 도심에서 멀지 않지만 의외로 조용하고 사람의 발길이 뜸한 뒷산 중 하나입니다. 이 산을 따라 걷다 보면, 다른 산들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녹슨 철문, 콘크리트 구조물, 잡풀 속에 숨은 울타리 등 일상적인 등산로에서는 보기 어려운 흔적들입니다. 겉보기에는 오래된 창고 같지만, 이곳은 한때 군사적으로 철저히 통제되었던 구 벽수산 탄약고 터입니다. 지도상에도 표기되지 않았던 이 시설은, 한국전쟁 이후 냉전기의 긴장 속에서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군사시설 중 하나였습니다. 오랫동안 비공개 지역으로 남아 있었던 탓에, 주민들에게조차 존재 이유와 역할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곳은 이제서야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서울 외곽 방어 전략과 벽수산의 군사적 역할
한국전쟁 직후부터 서울은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에 대비해 방어 체계를 재정비해야 했습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남북한의 대치가 격화되면서, 서울 외곽을 둘러싼 군사시설 구축이 본격화됩니다. 이 과정에서 벽수산은 군사적 요충지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북한에서 서울로 진입할 때 서북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는 주요 경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세가 깊고 도심과는 약간 떨어져 있어 은폐와 위장이 유리했습니다. 군 당국은 이 지역에 탄약 저장시설과 함께, 레이더 감시소, 유사시 전투 지휘소로 전환 가능한 벙커, 그리고 군 장비 이동을 위한 비공개 도로망 등을 구축하였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탄약고가 아니라, 서울을 마지막까지 지키기 위한 전시 비상거점 역할까지 염두에 둔 복합 군사시설이었습니다. 특히 인근에 배치된 기갑 부대나 보병 부대에 대한 보급과 무장 지원을 위해, 탄약 보관 기능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군사 전략 문서에 따르면 벽수산 일대는 유사시 ‘서울 북부 방어선 후방 병참지’로 사용될 계획이 있었고, 고양, 의정부, 은평을 잇는 교통망과의 연결성도 고려되었습니다. 냉전기 안보 위기 속에서 형성된 이 구조는,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결코 민간 중심의 공간만이 아니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일상과 단절된 뒷산, 폐쇄와 침묵이 낳은 기억의 공백
벽수산 탄약고는 수십 년 동안 민간인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된 지역이었습니다. 심지어 산책로도 우회하게끔 유도되었고, 주민들은 울타리 너머로 어떤 시설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일부 등산객이 이 철문 앞까지 도달한 경우도 있었지만, 군부대라는 표시만 있을 뿐 정확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존재하지만 설명되지 않은 장소, 보이지만 이해되지 않는 공간은 많은 경우 사회적으로 ‘망각의 영역’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이 공간의 ‘침묵’은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냉전기의 군사시설은 외부 노출 자체가 전략적 위험으로 간주되었고, 주민의 안전보다는 군사 기능의 보안 유지가 우선이었습니다. 벽수산 탄약고 역시 이러한 시기의 유산으로, 도시 안에 존재하지만 기억되지 못한 역사로 남게 된 것입니다. 특히 이 지역과 인접한 은평구 진관동이나 불광동 주민들조차 이 시설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지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이러한 망각은, 국가 안보가 시민사회와 어떻게 단절되어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폐허가 된 공간, 역사의 증거로 보존될 수 있을까
2000년대 이후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서 벽수산 탄약고는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고, 공식적인 기능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폐쇄된 군사시설의 특성상, 해당 부지는 여전히 군사보호구역 또는 제한 개발지역으로 남아 있으며, 지자체나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보존 계획을 수립하기엔 법적 제약이 따릅니다. 현재 일부 출입이 가능한 구역에는 콘크리트 벙커의 잔해, 철문, 낡은 철책이 남아 있으며, 안내판이나 설명 시설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위험하거나 쓸모없는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냉전 유산을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서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2022년부터 도시 속 군사 유산을 재조명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으며, 시민단체 또한 ‘보이지 않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습니다. 벽수산 탄약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기억해야 할 군사적 장소로 재조명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가 단지 행정과 문화의 중심이 아니라, 군사적 충돌의 전면에 놓였던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런 유산을 제거하거나 묻는 것이 아닌 적절한 방식으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역 사회와의 관계, 단절된 공간의 재해석 가능성
탄약고가 있던 지역은 오랫동안 ‘터부’처럼 여겨졌습니다. 등산객도 이 구역을 피해갔고, 부동산 지도에도 공백처럼 남겨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지역은 점차 일반 시민의 탐방 코스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벽수산을 둘러싼 은평구 진관동, 구파발, 불광동 일대는 최근 주거지와 상업지가 혼재된 지역으로 변모하면서, 과거의 군사 유산과 현재의 도시개발이 부딪히는 전환점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벽수산 탄약고는 더 이상 단순한 과거의 시설이 아니라, 현대 도시 공간에서 과거를 어떻게 소화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장소가 됩니다. 단절되고 폐쇄되었던 공간이, 도시의 역사 자산이자 교육적 자원으로 탈바꿈하려면 지역 사회와의 연계, 설명 기반 마련, 그리고 정책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시민 누구나 이곳을 ‘서울의 역사 장소’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바로 그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시점입니다.
서울 숨은 역사 장소로서 벽수산 탄약고가 지닌 특별한 가치
서울에는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는 역사 유산이 존재합니다. 조선시대의 궁궐, 일제강점기의 근대 건축물, 산업화기의 공장 지대 등 그 층위도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벽수산 탄약고는 냉전기라는 시대적 특수성을 반영하는 드문 사례입니다. 이곳은 단지 군사시설의 흔적이 아니라, 국가의 안보 우선주의가 시민의 일상에 어떤 방식으로 침투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입니다. 철문 너머로 보이는 낡은 구조물과 침묵의 풍경은, 전쟁과 평화의 이면,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온 역사적 층위를 동시에 상기시켜줍니다.
이처럼 벽수산 탄약고는 눈에 띄지 않지만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역사 장소입니다.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오늘, 이러한 공간은 그 자체로 경고이며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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