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숨은 역사 장소

서울역 앞 옛 교통부 청사, 근대 행정의 무대에서 역사기록보관소로 변한 공간의 흔적

pokhari 2025. 7. 18. 10:24

산업화의 시작을 지켜본 건물, 지금은 사라진 서울역 앞 옛 교통부 청사

서울역 광장을 지나 남대문 방향으로 걷다 보면, 과거 한 건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철거되어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지만, 서울역 앞에는 한때 대한민국 교통 행정의 중심지였던 ‘옛 교통부 청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이곳은 교통부의 초대 청사로 사용되며,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근대 행정 체계를 상징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이 건물은 미군정청 산하의 운수국 청사로 사용되었다가, 곧 대한민국 정부의 교통부로 넘겨지면서 한국의 철도, 해운, 항공 정책을 총괄하는 중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오늘날 국토교통부로 발전한 기관의 전신이 바로 이 교통부였다는 점에서, 서울역 앞 교통부 청사의 공간적 의미는 단순한 관공서 이상의 무게를 지녔습니다.

이 건물은 단순한 행정의 기능을 넘어서, 전후 복구와 산업화로 이어지는 시대의 실질적인 시작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파괴된 교통 인프라를 복구하고, 수출 주도형 경제 체제를 가능케 한 철도 및 도로망의 확장은 이 청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만큼 이 공간은 단순한 업무용 건물이 아니라, 20세기 중반 한국 사회가 움직이는 방향을 결정짓던 역사적 무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역의 모습

 

서울 도심 속 관공서 건축의 전형, 교통부 청사의 건축사적 가치

서울역 앞 교통부 청사는 그 건물 자체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기였던 1937년, 조선총독부 교통국 청사로 지어진 이 건물은 당시 유행하던 근대주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구조였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대칭적인 구조와 수직성을 강조한 외관, 그리고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단단한 형식미는 1930년대 말기 관공서 건축의 전형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외장재로는 회색 석재와 연한 갈색 벽돌이 사용되었으며, 정면에는 기둥이 돌출된 고전주의적 요소도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이 건물은 별다른 개조 없이 교통부 청사로 이어져 사용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교통부 외에도 철도청, 항공국 등 여러 기관이 이곳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이후 교통부가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로 이전하고, 철도청은 중앙청으로 이전하면서 이 건물은 1980년대부터 한동안 비어 있게 됩니다. 그 후 정부기록보존소 서울기록관, 서울시 교통회관 등으로 활용되며 다용도의 행정건물로 존재감을 이어갔습니다. 이처럼 이 건물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울 도심의 행정 기능을 떠맡으며, 시기마다 그 기능을 바꿔가며 시대의 흐름을 담아낸 장소였습니다.

 

조용한 철거, 아쉬움 속에 사라진 공간

하지만 이 역사적 건물은 2005년, 조용히 철거되었습니다. 서울역 일대 도심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철거는 당시 시민사회나 문화재 보존 단체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이루어졌습니다. 철거 이전 이 건물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했고, 건축사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 서울역 광장을 넓히고 주변 환경을 정비한다는 명목 아래, 오랜 세월 교통 행정의 심장부였던 이 건물은 자취 없이 사라졌습니다.

당시 일부 언론은 “서울역 앞 교통부 청사는 도시계획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보도를 내보내며 안타까움을 전했지만, 실질적인 여론의 관심은 크지 않았습니다. 복합환승센터와 광장 확장 계획이 우선되었던 도시개발 흐름 속에서, 이처럼 조용히 사라진 공간들은 오늘날 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서울역 일대의 역사 지형도와 근대 공간의 기억

서울역 일대는 본래 경성역이라는 이름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계획도시의 핵심이었습니다. 일본과 만주, 그리고 내륙지방을 연결하는 철도 거점으로 사용된 이곳은 1925년 서울역 본청사가 들어서며, 본격적인 철도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서울역은 수도 서울의 중심 기능을 유지했고, 이 일대에는 각종 교통, 행정, 군사 시설이 집중되었습니다. 교통부 청사 역시 이런 맥락 속에서 자리 잡은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교통부 청사 주변으로는 대한국민항공사 본사, 서울역 기계창, 철도 병원 등 철도 및 운수 관련 인프라가 밀집해 있었습니다. 서울역 앞이라는 상징성과 실질적인 기능성을 모두 갖춘 이 공간은 그 자체로 서울의 근현대사를 대변하는 무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현대화된 건물과 개발 지구가 들어서며, 옛 청사의 흔적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여전히 이곳에 옛 청사를 기억하며, “역사기록보관소로서라도 남아 있었다면 서울역의 상징성은 더 강화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교통부 청사 복원 논의는 없었을까?

한때 이 건물을 복원하자는 목소리도 존재했습니다. 철거 이후 시민단체와 일부 건축사학자들은, 근대 관공서 건축의 희소성을 이유로 복원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관공서에서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의 이행을 공간적으로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사례라는 점이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건물 자체가 완전히 철거된 이후여서 복원은 구조적, 행정적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당시 서울역 일대 재개발이 민간 사업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보존 논의는 흐지부지 사라졌습니다.

현재 서울역 광장 부근에는 해당 건물의 존재를 알리는 표식이나 기념물도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과거 교통부 청사가 위치했던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조차 드물며, 단편적인 사진 자료와 일부 공공 기록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서울의 주요 역사 공간이 도시개발이라는 흐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멸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기도 합니다.

 

도심 재개발 속 잊힌 공간의 기록, 남겨야 할 기억

서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이면에는 늘 ‘잊혀지는 장소’들이 존재해왔습니다. 서울역 앞 옛 교통부 청사는 단순히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관공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국가의 기반 인프라가 설계되고 시행되던 곳이었고, 행정의 흐름과 시대의 요구에 따라 공간적 역할을 달리했던 살아 있는 역사 무대였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 공간이 지녔던 역사적 무게와 건축사적 의미, 그리고 도시 속 기억의 층위를 되짚어보는 일은 여전히 유의미합니다.

이처럼 단절된 기억들을 다시 연결하는 일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시작점입니다.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여전히 역사 속에 살아 있는 공간들의 이야기를 되짚는 일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미래 도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소중한 작업이 될 수 있습니다.

옛 교통부 청사의 사례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품은 수많은 흔적 중에서도 특히 행정, 산업, 도시계획이라는 복합적인 키워드를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장소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맞닿은 중요한 문화적 기록의 일부로서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