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

(53)
종로경찰서 옛터, 일제 경찰통치의 심장을 지나 현대 치안의 교차점이 된 장소 권력의 감시가 교차하던 서울 중심의 한 장소서울 종로 한복판, 지금은 번화한 도심의 일상이 흐르는 자리였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이곳은 통제와 감시, 권력의 작동이 집중되던 장소였습니다. 바로 종로경찰서 옛터 이야기입니다. 종로경찰서는 서울의 행정·정치 중심부에 위치했던 만큼 단순한 지역 경찰서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치안 통제 전략의 핵심 지점으로 활용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서울 치안의 상징적인 거점으로 기능하며 근현대사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여러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현재는 경찰서 본관이 철거되어 더 이상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그 자리에 남은 기억들은 서울이 지나온 경찰권력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단순한 건물의 흥망이 아니라, 이 공간은..
한강철교 폭파지점, 전쟁과 피난의 길목이 된 강 위의 기억 전쟁이 남긴 단절, 한강 위의 기억을 걷다한강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경계를 가르는 물줄기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기억이 스며든 공간입니다. 강 위에 놓인 다리들은 단순한 교량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한강철교는 근현대사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상징적으로 품고 있는 장소입니다. 특히 1950년 6월 28일, 한국전쟁 초기 서울 방어를 위한 군사적 결정으로 한강철교가 폭파되었던 사건은 단순한 교량 파괴가 아니라 민간인 대피 실패, 수도 서울의 급작스러운 함락, 그리고 수많은 피난민의 죽음이라는 참극을 남긴 비극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오늘날 그 폭파 지점은 복구되어 다리가 새로 놓였지만, 그곳에는 더 이상 기억의 표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울의 수많은 다리 중 하나로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을 뿐, ..
서울역 뒤 일본육군병원터, 근대의료와 식민지 권력이 얽힌 잊힌 공간 의도적으로 감춰진 병원의 터, 서울역 뒤편의 침묵서울역을 지나 남쪽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이 일대가 일제강점기 시절 중요한 의료·군사적 기능을 담당했던 지역이라는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관광객들이 바쁘게 이동하는 이곳 뒤편에는 과거 일본군 육군병원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낡은 도로와 평범한 건물들 사이에 특별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곳은 한때 식민지 권력의 의료 지배가 본격화되었던 장소였습니다. 특히 이곳은 단순한 치료 공간을 넘어, 일제의 군사력 유지와 병력 회복을 위한 핵심 인프라였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과 기능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서울역 일대는 근대 도시계획의 중요한 일부로 편입되며 각종 행정과 운송, 통신망의 중심지로 정비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일본 육군병원이 자리했..
장충단비, 사라진 제단의 그림자와 일제 식민 기억의 흔적 한때의 충절이 사라진 자리, 그리고 남겨진 비석 하나서울 중구 장충동 일대, 동국대학교와 국립극장이 자리 잡고 있는 지금의 평화로운 공간은 과거 수많은 이야기가 중첩된 역사적 장소입니다. 특히 이곳에는 1900년에 세워졌던 ‘장충단(奬忠壇)’이라는 제단이 있었고, 그 흔적으로 장충단비가 오늘날까지도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이 비석은 단순한 기념물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제국주의적 기념공간, 민족 기억의 왜곡, 그리고 식민권력이 공간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이용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현재 장충단이라는 이름은 공연장이나 공원의 이름으로만 명맥을 유지할 뿐, 그 실제 역사적 맥락은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장충단의 설치는 조선 말기 일본에 의해 살해당한 명성황..
서울역 앞 옛 교통부 청사, 근대 행정의 무대에서 역사기록보관소로 변한 공간의 흔적 산업화의 시작을 지켜본 건물, 지금은 사라진 서울역 앞 옛 교통부 청사서울역 광장을 지나 남대문 방향으로 걷다 보면, 과거 한 건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철거되어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지만, 서울역 앞에는 한때 대한민국 교통 행정의 중심지였던 ‘옛 교통부 청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이곳은 교통부의 초대 청사로 사용되며,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근대 행정 체계를 상징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이 건물은 미군정청 산하의 운수국 청사로 사용되었다가, 곧 대한민국 정부의 교통부로 넘겨지면서 한국의 철도, 해운, 항공 정책을 총괄하는 중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오늘날 국토교통부로 발전한 기관의 전신이 바로 이 교통부..
경교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의 마지막 거점이 된 서울의 저택 해방 후 혼란 속에 세워진 독립운동의 상징 공간1945년 8월,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반도는 미군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고, 해방은 곧바로 또 다른 혼란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랜 망명 끝에 귀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들이 서울에서 머물며 활동 거점으로 삼았던 공간이 바로 ‘경교장’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단순한 숙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당시 임정의 서울 활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특히 백범 김구 선생이 이곳에서 머물며 정부 수립을 위한 정치적 노력을 기울였고, 그의 생애 마지막을 마무리한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경교장은 서울 종로구 평동 일대에 위치한 1930년대 양식의 2층 벽돌 건물로, 원래는 친일 자본가 최창학이 사적으로 건축한 대저택이었습..
서빙고터, 얼음을 지키던 조선의 냉장 창고 유적 한강변에 묻힌 유산, 조선의 얼음 창고 ‘서빙고터’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대교 아래로 이어지는 자전거길과 산책로 인근에는 ‘서빙고’라는 이름이 붙은 동네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명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아는 시민은 많지 않습니다. 사실 ‘서빙고’는 조선시대 궁궐에서 사용할 얼음을 저장하고 관리하던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당시 국가 제도 안에 편입된 왕실 전용 냉장 보관소였습니다. 지금은 일부 유적만이 복원되어 자그마한 공원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조선의 과학기술, 궁중 문화, 물류 체계, 계절 인식이 고스란히 담긴 이곳은 분명히 ‘서울의 숨은 역사 장소’라 할 만합니다. 오늘날의 시선으로는 그저 오래된 지명일 수 있지만, 이 공간은 한양 도시 운영의 핵심 요소 중 하나였으며, 조선이 얼마나 정교..
서울 구 벽수산 탄약고 터, 냉전의 기억이 스며든 은평의 뒷산 은평구 벽수산 자락, 낯선 철문이 지닌 군사 유산의 흔적서울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의 경계에 자리한 벽수산은, 도심에서 멀지 않지만 의외로 조용하고 사람의 발길이 뜸한 뒷산 중 하나입니다. 이 산을 따라 걷다 보면, 다른 산들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녹슨 철문, 콘크리트 구조물, 잡풀 속에 숨은 울타리 등 일상적인 등산로에서는 보기 어려운 흔적들입니다. 겉보기에는 오래된 창고 같지만, 이곳은 한때 군사적으로 철저히 통제되었던 구 벽수산 탄약고 터입니다. 지도상에도 표기되지 않았던 이 시설은, 한국전쟁 이후 냉전기의 긴장 속에서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군사시설 중 하나였습니다. 오랫동안 비공개 지역으로 남아 있었던 탓에, 주민들에게조차 존재 이유와 역할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곳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