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숨은 역사 장소 (45) 썸네일형 리스트형 홍지문과 탕춘대 성벽, 북악산 기슭의 조선 방어 전략 북악산 기슭, 조선의 방어 축선이 살아 숨 쉬는 곳서울 성북구와 종로구의 경계에 해당하는 북악산 기슭은 조선 시대 한양의 북쪽 경계를 이루던 중요한 방어선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북악산을 등산지로만 알고 있지만, 이 일대는 한양도성의 중요한 구간이자 군사 방어 전략의 핵심이었던 곳입니다. 특히 홍지문과 탕춘대 성벽이 자리한 이 지역은 한양 도성 방어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소입니다.홍지문은 조선 후기에 축조된 도성의 문으로, 북악산을 넘어가는 주요 통로 중 하나에 설치된 소규모 관문입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곧장 탕춘대 성벽으로 이어지며, 도성의 외곽 방어선과 자연 지형을 결합한 방어 전략이 펼쳐지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 일대는 조선 초기부터 자연지형을 활용해 방어 .. 신당동 철도박물관 자락, 서울 산업화의 흔적이 된 장소 신당동 철도박물관 자락, 왜 주목해야 하는가서울 중구 신당동은 흔히 떡볶이 타운이나 재개발지구로 알려져 있지만, 이 지역이 지닌 깊은 역사와 공간의 층위를 들여다보면 단순한 상업지 이상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당역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사이, 즉 현재 신당동 철도박물관 자락으로 알려진 구간은 일제강점기부터 서울의 철도 교통 및 물류 허브 역할을 해온 상징적인 장소입니다.현재는 그 흔적이 거의 사라졌지만, 이 일대는 한때 철도차량의 보수·정비와 철도 인력의 배치, 승객 수송을 위한 거점으로 기능했던 곳이었습니다. 오늘날 철도박물관 일부 유물이나 구조물만이 남아 과거를 증언하고 있지만, 이곳은 서울이 산업도시로 발전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한 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자락.. 정동극장 옆 골목, 외교와 문화가 교차한 공간의 기억 근대 서울의 첫 외교지구, 정동의 시작점서울 중구 정동 일대는 근대 서울의 외교·문화 중심지로 알려진 지역입니다. 경복궁에서 덕수궁으로 이어지는 궁궐 축선에서 살짝 벗어난 이 정동은 조선 말기부터 외세와의 접촉이 본격화되면서 외국 공사관, 선교사 주택, 신문사, 학교, 병원 등이 밀집한 구역으로 발전했습니다.그 중심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동극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동극장만 기억하고, 그 옆 골목이 담고 있는 역사적 의미는 잘 알지 못합니다. 정동극장 옆 골목, 그러니까 지금의 배재학당역사박물관과 구 러시아 공사관터로 이어지는 작은 길목은 조선이 근대 문명과 처음으로 조우했던 결정적인 현장입니다.이 골목은 단순한 뒷길이 아닙니다. 조선 말기 외국 사절단이 덕수궁을 방문.. 이화동과 낙산, 예술마을 아래 숨겨진 성곽의 기억 성곽의 선을 따라 이어진 이화동의 길서울 한복판에서 성곽과 일상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이화동과 낙산 일대는 도시와 역사가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공간으로, 조선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화동은 종로구 동쪽에 위치한 동네로, 낙산 자락을 따라 이어진 골목과 계단길, 그리고 성곽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이 지역은 단순히 풍경이 아름답고 예술적 감성이 깃든 마을이라는 이유로만 주목받아온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화동은 조선 시대 한양 도성의 동쪽 방어선의 일부로, 낙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산세와 성곽의 흐름이 도성의 동벽을 구성하며 매우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었습니다. 특히, 이화동에서부터 시작되는 낙산 성곽길.. 경희궁 뒤편, 서대문형무소 자락에 숨겨진 장소들 경희궁 너머, 잘 알려지지 않은 공간이 있습니다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경희궁은 여러 궁궐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는 곳입니다. 조선 후기 궁궐이었던 이곳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머물렀던 공간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은 다른 궁궐에 비해 적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 경희궁 뒤편, 곧 서대문 일대로 넘어가면 서울 시민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역사적 장소들이 숨어 있습니다.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가 조성되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공간 중 하나로 변모하였고, 이후에도 도시 개발 과정에서 잊혀지거나 훼손된 수많은 장소들이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공원과 기념관, 아파트 단지 등으로 바뀌었지만, 그 아래에는 독립운동과 투쟁, 억압과 수용, 저항과 기록의 역사가 켜켜이.. 동십자각과 종묘 사이, 사라진 거리의 기억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사라진 길을 기억하십니까종로3가와 율곡로가 만나는 지점, 동십자각이 서 있던 자리 앞을 걷다 보면 길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육각형 건물을 마주하시게 됩니다. 바로 ‘동십자각(東十字閣)’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저 교통섬이나 고풍스러운 구조물 정도로 여길 수 있지만, 이 건물은 조선 시대 한양 도성의 정중앙, 그것도 국가의 길과 제사의 공간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졌던 매우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오늘날 동십자각은 종묘와 창덕궁을 오가는 차들 사이에 고립되어 있고, 그 앞을 걷는 시민들 대부분은 이곳이 왕실의 제례 행렬이 지나는 중심축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지나치곤 합니다. 동십자각과 종묘 사이의 거리에는 실제로 ‘길’이 있었습니다. 왕이 걷고 백성이 절하며 제례가 이어졌던, 지금은 흔.. 흥인지문 바깥, 동대문 밖 사대문 외곽의 잊힌 공간들 사대문 안에서만 서울의 역사를 볼 수 있을까요?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라 하면 보통 경복궁이나 창덕궁, 또는 종묘와 같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도성 내부의 화려한 궁궐이나 성곽만이 서울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왕조 500년의 수도였던 한양은 성문 안보다 오히려 성문 밖에서 더 활발히 기능했던 삶의 공간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특히 사대문 중 동쪽의 흥인지문 바깥은 지금까지도 ‘중심지에서 조금 비껴난’ 곳으로 여겨지며, 역사 속 기억에서조차 소외되어 있습니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지역은 단순히 도성 밖의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후기 상업 발달의 흔적, 근대 도시계획의 실험장, 그리고 지금도 남아 있는 생활 공동체의 맥락까지. 흥인지문 바깥은 도심 .. 혜화동 고희동 가옥, 조선 최초 서양화가의 집에 남은 근대의 흔적 조용한 골목에 숨겨진 근대 문화공간의 흔적서울 종로구 혜화동, 북적이는 대학로와 불과 수백 미터 거리에 위치한 이 지역은 한때 서울의 문화·예술 중심지였습니다. 이곳 골목 한편에 자리한 ‘고희동 가옥’은 겉보기에는 소박한 한옥이지만, 알고 보면 조선 근대미술의 태동과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의 문화 활동을 품고 있는 매우 귀중한 공간입니다.고희동(1886~1965)은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져 있으며, 이 가옥은 그가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던 주거이자 작업실입니다. 현재는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분들이 이 공간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고 계십니다.조용한 골목 안쪽, 아무 표식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가옥은 서울이 간직한 숨은 역사 장소 중 하나입니다. 화려..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