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숨은 역사 장소

혜화동 고희동 가옥, 조선 최초 서양화가의 집에 남은 근대의 흔적

pokhari 2025. 7. 8. 20:22

조용한 골목에 숨겨진 근대 문화공간의 흔적

서울 종로구 혜화동, 북적이는 대학로와 불과 수백 미터 거리에 위치한 이 지역은 한때 서울의 문화·예술 중심지였습니다. 이곳 골목 한편에 자리한 ‘고희동 가옥’은 겉보기에는 소박한 한옥이지만, 알고 보면 조선 근대미술의 태동과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의 문화 활동을 품고 있는 매우 귀중한 공간입니다.
고희동(1886~1965)은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져 있으며, 이 가옥은 그가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던 주거이자 작업실입니다. 현재는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분들이 이 공간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고 계십니다.

조용한 골목 안쪽, 아무 표식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가옥은 서울이 간직한 숨은 역사 장소 중 하나입니다. 화려한 조명이 없기에 오히려 이 공간의 역사성과 예술성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고희동의 삶: 격동의 시대 속 예술로 저항한 지식인

고희동은 1886년 한성부에서 태어나 한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1909년 일본 도쿄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해 유화를 전공하며 본격적인 서양화의 세계로 들어섭니다. 당시 조선은 이미 대한제국에서 일본 식민지로 편입되어 있었고, 많은 청년 지식인들이 민족의 자존과 예술적 독립을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고희동은 귀국 후 1915년 조선 최초의 개인 유화 전시회를 개최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는 전통 동양화 중심이던 조선 미술계에 유화라는 새로운 언어를 소개하고, 미술을 통해 시대의 감정과 자각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한 예술가이자 지식인이었습니다. 고희동의 예술에는 현실 인식이 녹아 있으며, 이는 1920~30년대 민족주의적 문화운동과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관련 인사들과 교류했으며, 자신의 집에서 소규모 문화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서양화가의 집에 있는 근대의 흔적

 

고희동 가옥의 건축적 특징과 문화사적 가치

고희동 가옥은 1910년대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전형적인 서울식 한옥 구조를 따르면서도 근대적인 요소를 일부 갖춘 점이 특징입니다. 전체적으로는 ㄱ자형 안채에 사랑채가 별도로 붙어 있고, 아담한 중정을 중심으로 외부에서 내부가 직접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그가 사용하던 ‘화실 공간’입니다. 자연광이 잘 들어오도록 남향으로 창문이 배치되어 있고, 일반적인 온돌 대신 마룻바닥을 넓게 설계하여 작품 제작이 가능하도록 꾸며져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한옥 구조에서는 보기 드문 개념으로, 서양화 작업에 적합한 공간 구조를 구현하려 했던 고희동의 실용성과 예술적 감각을 보여줍니다.

외부에서 보면 단순한 한옥이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당대 지식인의 생활 양식과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거실과 작업실에는 근대 문명과 전통 가옥의 접점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가옥 주변으로는 과거 예술가들이 자주 드나들던 골목길이 지금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혜화동, 근대 예술과 지성의 터전이 되다

오늘날 대학로로 잘 알려진 혜화동 일대는 1920~30년대 당시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대표적인 문화 지구였습니다. 이곳에는 고희동 외에도 이광수, 한용운, 최남선, 김억 등 문학·사상계를 이끌던 인물들이 거주했으며,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당시 집터와 흔적은 여전히 이 지역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특히 고희동의 집은 그러한 흐름 속에서 지식인들이 자주 드나들며 토론하고 예술을 나누던 ‘작은 살롱’의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직접 제작한 작품 외에도, 이 가옥은 민족예술의 실천 공간이었고, 서양화의 한국적 정착 과정에 중요한 중추 역할을 했습니다.

혜화동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20세기 초반 조선 지식인들의 문화운동과 민족예술의 실험이 이루어진 공간이며, 고희동 가옥은 그 중심지 중 하나였다고 평가받습니다. 서울 도심 안에 존재하는 숨은 역사 장소라는 점에서 이곳의 가치는 지금도 매우 큽니다.

 

고희동 가옥의 현재와 보존을 위한 움직임

현재 고희동 가옥은 서울시의 문화재 보호 조치에 따라 외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서울시 등록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다만, 일반인에게 상시 공개되지는 않고 있으며, 일부 특별 전시나 문화행사 기간에만 개방되고 있습니다.

종로구청과 서울시 문화재청은 이 가옥을 근대 문화유산 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복원 사업과 학술조사를 진행 중이며, 고희동의 작품 세계와 근대 미술사적 위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아카이브 작업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근대 예술가의 삶과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역사교육 콘텐츠로 확장될 계획도 검토 중입니다.

현재 건물은 외형은 온전히 보존되어 있으나, 내부 일부 공간은 안전상의 이유로 출입이 제한되기도 하며, 향후 전면적인 복원 후 시민 공개 여부가 결정될 예정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이야말로 이 가옥이 지닌 의미를 재발견하고 널리 알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숨은 역사 장소로서 고희동 가옥이 가지는 의미

서울은 겉으로 보기엔 현대적이고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이지만, 곳곳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의 조각들이 숨어 있습니다. 고희동 가옥은 화려한 표지판이나 관광객의 붐비는 발길 없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은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조선의 근대 문화가 싹튼 출발점이자, 예술로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내려 한 지식인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입니다.

이처럼 서울의 숨은 역사 장소는 누군가의 위대한 행적만을 기념하는 곳이 아니라, 일상 속에 스며든 역사, 예술, 사상이 함께 녹아든 장소일 수 있습니다. 고희동 가옥은 그 대표적인 예시이며, 앞으로 서울의 도시문화유산 정책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찾는 이가 적지만, 그만큼 이 공간을 먼저 이해하고 보존의 가치를 느끼는 분들이 늘어난다면, 고희동 가옥은 서울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공간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