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숨은 역사 장소

경춘철교와 옛 왕십리역, 서울 동북부 교통의 시간 흔적

pokhari 2025. 7. 8. 10:28

잊힌 다리, 낡은 철로, 그리고 사라진 역사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중랑천을 사이에 두고 놓인 한 오래된 철교가 있습니다. 이름은 ‘경춘철교’.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과거 경춘선 열차가 지나던 철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전철이 아닌 보행자와 자전거가 오가는 한강 자전거 도로 일부가 되어 있지만, 이 다리 위에는 서울 동북부 교통과 산업의 변화를 품은 긴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철교에서 멀지 않은 곳, 오늘날 왕십리역이 자리한 바로 그 부근에는 과거 '옛 왕십리역'이라 불리던 역사(驛舍)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진 오래된 간이역이지만, 한때는 청량리에서 출발한 경춘선의 시작점이자, 서울 시민들의 주말 나들이와 피서 여행을 책임지던 교통의 거점이었습니다.

이제는 주변 풍경도 바뀌고, 그 자리에 백화점과 복합상업시설이 들어섰지만, 과거 왕십리역과 경춘선 철길은 서울의 근현대 도시화와 교통 발달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숨은 역사 장소’입니다.

 

옛 왕십리역

 

서울 동북부의 교통 중심지였던 왕십리, 지금은 잊힌 환승역의 역사

왕십리는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교통 요지였습니다. 이름부터가 '사방 오 리 밖’이라는 뜻에서 유래할 정도로, 한양 외곽의 교통 경계선이자 군사·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입니다.

1939년, 왕십리역은 경춘선의 시종착역으로 출발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청량리역과 왕십리역은 별도로 운영되었으며, 왕십리는 서울 동북부 철도 노선의 출발점이자, 지역 주민들의 물류와 인력 이동의 주요 통로였습니다.

1950~70년대에는 경춘선 왕십리춘천 구간 열차가 주말이면 만원 상태로 운행되었고, ‘청평’, ‘가평’, ‘춘천’은 서울 시민들에게 주말 나들이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왕십리역은 그런 나들이의 출발지로서 기능했으며, 전동열차가 없던 시절, 디젤 동차가 힘차게 출발하던 풍경은 지역 주민들의 일상이자 추억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급격한 도시 재편과 철도 노선 개편이 이어지며, 경춘선 출발역은 청량리로 통합되고, 왕십리역의 기능은 축소됩니다. 1980년대에는 역사가 사실상 철거되었고, 왕십리라는 이름만 지하철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경춘선 철교, 철길 위로 걸어본 시간의 단면

경춘철교는 성동구 성수동에서 중랑천을 건너 광진구 중곡동과 연결되는 철교로, 본래 경춘선이 지나던 단선 철도 구간이었습니다. 철교 자체는 단순한 기능을 지닌 구조물이었지만, 서울에서 철길이 강을 건너는 드문 구간 중 하나로, 산업과 교통이 맞물린 도시 인프라의 결정체였습니다.

이 철교는 1930년대 말 일본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수송하기 위해 만든 산업용 철도 인프라였으며, 광복 후에는 서울과 춘천을 연결하는 여객 열차가 실제로 지나던 경로였습니다. 성수동 일대의 수많은 공장들과도 연결되어 있어, 철도는 사람뿐 아니라 자재, 제품, 심지어 석탄까지 실어나르며 서울 동북부 산업화를 견인했습니다.

지금은 철길이 끊기고, 철교 위에 자전거길이 놓였지만, 철교의 하부 구조와 철제 난간, 일부 녹슨 레일의 자취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는 단지 낡은 다리가 아니라, 서울 도시 철도사의 한 단락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서울 숨은 역사 장소로서 ‘왕십리역’이 중요한 이유

대부분의 서울 시민은 오늘날의 왕십리역을 ‘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 정도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지하에는 한때 경춘선 디젤 열차가 드나들던 좁은 플랫폼과 대합실, 철도신호소 등이 자리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왕십리역은 단순한 정거장이 아닌, 도시 외곽 교통의 거점이자, 도시 확장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서울이 산업도시로 변모하던 시기, 많은 노동자들이 왕십리역을 통해 서울 도심과 교외를 오갔고, 주말이면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이 역에서 ‘춘천행 완행열차’를 기다리며 도시 외곽의 자연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러한 교통 문화는 서울의 주거 구조, 여가 패턴, 근교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왕십리역이 단순히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서울 동북부 생활문화의 구심점이었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재조명할 가치가 있습니다.

 

산업과 철도가 교차하던 성수동, 왕십리의 뿌리

경춘선이 지나던 성수동과 왕십리 일대는 한때 서울의 산업화 중심지였습니다. 구두 공장, 봉제 작업장, 인쇄소가 밀집해 있었고, 이들은 대부분 철도를 통해 물류를 처리했습니다. 1960~80년대 서울은 차량 수송보다 철도 의존도가 훨씬 높았기 때문에, 철길은 곧 생명선이자 산업의 혈관이었습니다.

왕십리역을 통해 들어온 자재는 성수동으로 흘러들었고, 완성된 제품은 경춘선을 타고 다시 외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오늘날에는 서울숲과 성수동 카페 거리로 변모했지만, 여전히 성수동 뒷길 곳곳에는 옛 철도 창고, 공장 외벽, 폐선로의 흔적이 남아 있어 당시의 산업 경관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기억 속에 남은 공간들

지금의 왕십리역 일대는 대형 백화점과 복합 상업지구로 개발되어, 옛 철도 역사의 흔적은 거의 찾기 어렵습니다. 과거 경춘선이 지나던 노선도 대부분 폐선되어 아파트 단지나 도로로 바뀌었고, 왕십리역사 또한 완전히 철거되어 기록으로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시민사회와 지역 역사 단체를 중심으로 ‘왕십리 옛 역사의 복원’이나 ‘경춘철교 보존’을 위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철도 역사를 넘어서, 서울 도시화의 한 단면이자 산업화의 증인으로서 이들 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입니다.

 

왕십리,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도시의 회랑

왕십리라는 이름은 조선의 교통 경계에서 시작해, 일제의 철도 전략, 산업화기의 물류 거점, 그리고 현대의 환승 허브로 변모해온 서울 도시의 압축된 시간을 품고 있습니다. 지금은 지하철 환승역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우리가 발 딛는 이곳엔 여전히 수많은 철도의 이야기와 산업화 시대의 숨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경춘철교와 옛 왕십리역은 서울의 숨은 역사 장소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며,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방식’으로 시민의 일상 속에 되살릴 수 있는 역사 자산입니다.

 

탐방 정보 및 주변 연계

  • 위치: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광장, 성수동 일대
  • 지하철: 2·5호선 왕십리역, 분당선, 경의중앙선 환승 가능
  • 탐방 포인트:
    • 왕십리역 광장 내 역사 안내판
    • 성수동 중랑천변 경춘철교 위 보행로
    • 성수동 일대 철도창고 재활용 건물 (카페, 스튜디오 등)
    • 서울숲과 연계한 도보 탐방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