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베이킹 인포랩’ 시리즈의 일곱 번째 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많은 분들이 간과하기 쉬운 요소, 바로 재료를 반죽에 넣는 순서가 결과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베이킹을 막 시작했을 땐 “어차피 다 한데 섞는 건데, 순서가 무슨 상관일까?”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실제로는 순서 하나만 달라져도 결과물의 식감과 모양, 심지어 굽는 중에 벌어지는 반응까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재료의 순서는 단순한 단계가 아니라 ‘구조 설계’입니다
반죽은 단순히 재료를 섞는 행위가 아니라, 재료들이 서로 작용하며 물리적, 화학적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각 재료는 섞이는 순서와 타이밍에 따라 반죽 안에서의 역할이 달라지고, 그 결과로 완전히 다른 조직감이나 퍼짐, 부풀기, 심지어 맛까지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버터와 설탕을 먼저 섞는 것은 공기를 포함시키는 데 큰 목적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생략하거나 순서가 바뀌면 부피가 줄고, 조직이 치밀해지며 전체적으로 딱딱하거나 퍽퍽한 식감이 생깁니다. 또, 계란을 너무 일찍 넣게 되면 버터와 물이 분리되며 유화가 깨지고, 결과적으로 반죽이 분리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반죽에 밀가루나 다른 가루류를 너무 빨리 넣으면 글루텐이 일찍 형성되어 쫀득하고 무거운 질감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재료를 어떤 순서로 넣느냐는 단순한 레시피의 흐름이 아니라 반죽을 ‘설계’하는 핵심 기초 공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재료, 다른 순서로 반죽했을 뿐인데 뭐가 다를까
‘베이킹 인포랩’에서는 이 내용을 실험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동일한 재료와 비율을 가지고 세 가지 방식으로 머핀을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버터와 설탕을 먼저 크림화한 뒤, 계란과 가루류를 순서대로 넣는 방식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전 재료를 한 번에 넣고 섞는 방식이었고, 세 번째는 계란과 설탕을 먼저 섞고, 이후 버터를 넣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매우 극명했습니다. 첫 번째 방식으로 만든 머핀은 부드럽고 균형 잡힌 질감을 보여주었으며, 굽는 동안 모양도 잘 유지되었고 표면이 매끄러웠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전체적으로 퍼짐이 심하고 중앙이 꺼지며, 굽기 전부터 반죽이 지나치게 묽은 느낌을 보였습니다. 세 번째 방식은 혼합이 고르게 되지 않아 반죽 내 지방이 덩어리 지거나 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굽는 도중 크랙이 심하게 발생했습니다. 재료는 모두 같았지만, 순서만 바꾼 것으로 이렇게까지 결과가 달라졌다는 사실은 베이킹의 본질이 '어떻게 섞느냐'보다 '어떤 순서로 섞느냐'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반죽 안에서 재료가 반응하는 시점은 매우 민감합니다
반죽이라는 것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섞는 순간부터 재료 사이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역동적인 환경입니다. 설탕이 수분을 흡수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전분이 물을 만나 팽윤하고, 단백질은 서로 엉겨 글루텐 구조를 만들기 시작하죠. 이 모든 반응은 재료를 넣는 시점과 순서에 의해 시작되고 조절됩니다.
버터와 설탕이 먼저 만나면 공기층이 생겨 부드럽고 폭신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밀가루가 물과 먼저 만나면, 글루텐이 빠르게 형성되며 결과적으로 조직이 조밀하고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각 재료는 섞는 순서에 따라 반응 속도와 범위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완성된 베이킹 제품의 특성도 함께 결정됩니다.
혼합 방식보다 순서가 핵심입니다
베이킹에는 여러 가지 반죽 방식이 존재하지만, 그 방식의 핵심은 결국 재료가 언제, 어떻게 만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크림법은 버터와 설탕을 먼저 섞고, 그 후 계란과 가루류를 넣는 방식인데, 이는 공기 포집과 유화가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 쿠키나 케이크에 적합합니다. 반면 머핀법은 액체와 가루 재료를 각각 섞은 뒤 빠르게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퍼짐보다는 촉촉함을 원하는 팬케이크나 머핀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달걀을 먼저 휘핑해서 공기를 포집한 뒤 가루를 섞는 휘핑법은 스펀지케이크나 롤케이크 등 가벼운 질감을 원하는 제품에 적합하죠.
하지만 이러한 방식들도 결국 그 안에 담긴 재료 간의 이상적인 만남의 순서가 핵심입니다. 어떤 방식이든 그 순서를 무시하거나 재량으로 바꿔버릴 경우, 실험에서처럼 예측 불가능한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레시피가 왜 그런 순서를 지시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진짜 실력을 쌓는 길입니다.
섞는 순서가 실패와 직결된 실전 사례들
실제로 많은 홈베이커들이 베이킹을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순서를 바꿔 실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가운 버터를 녹이지 않고 바로 밀가루와 섞게 되면 버터가 고르게 분포되지 않고 한쪽에 뭉쳐서, 반죽 전체에 기름기가 들쑥날쑥하게 됩니다. 또, 계란을 너무 초기에 넣으면 수분과 지방이 분리되어 덩어리진 반죽이 되거나, 반죽이 제대로 섞이지 않아 가운데가 덜 익는 결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무심코 모든 재료를 한 번에 섞는 방식은 시간이 절약되는 것 같지만, 구조적으로는 가장 실패율이 높은 방법입니다. 반죽이 제대로 혼합되지 않아 구워진 결과물이 딱딱하거나 안에서 갈라지거나, 혹은 질척하게 퍼지는 등 다양한 실패 요인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섞는 순서를 무시하는 것은 “설계도 없이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은 행위가 됩니다.
순서를 이해하면 반죽이 보입니다
베이킹은 감이 아니라 과학이며, 재료의 순서는 그 과학의 기본 공식입니다. 단순히 정해진 대로 재료를 넣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순서로 섞는지를 이해하면 훨씬 더 예측 가능한 결과를 만들 수 있고, 자신의 레시피를 설계하는 힘도 생깁니다.
‘베이킹 인포랩’ 실험을 통해 확인했듯이, 재료의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완성된 제품의 질감, 모양, 향기까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베이킹을 할 때 레시피를 보며 “이건 왜 이 순서일까?”를 고민해보는 순간, 여러분의 베이킹은 더 이상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설계하는 단계로 올라설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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