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과 종묘 사이, 사라진 거리의 기억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사라진 길을 기억하십니까
종로3가와 율곡로가 만나는 지점, 동십자각이 서 있던 자리 앞을 걷다 보면 길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육각형 건물을 마주하시게 됩니다. 바로 ‘동십자각(東十字閣)’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저 교통섬이나 고풍스러운 구조물 정도로 여길 수 있지만, 이 건물은 조선 시대 한양 도성의 정중앙, 그것도 국가의 길과 제사의 공간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졌던 매우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오늘날 동십자각은 종묘와 창덕궁을 오가는 차들 사이에 고립되어 있고, 그 앞을 걷는 시민들 대부분은 이곳이 왕실의 제례 행렬이 지나는 중심축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지나치곤 합니다. 동십자각과 종묘 사이의 거리에는 실제로 ‘길’이 있었습니다. 왕이 걷고 백성이 절하며 제례가 이어졌던,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그 길. 이 글에서는 바로 그 사라진 거리의 역사적 정체를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동십자각은 왜 ‘십자각’이라 불렸는가
‘동십자각’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방향 지시가 아닙니다. 이는 조선 시대 도심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십자각(十字閣)’은 말 그대로 십자형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세운 정자를 뜻하는데, 한양도성에서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정확히 십자형 도로망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동, 서, 남, 북 네 방향 각각에 십자각이 있었고, 그 중심에서 왕이 사방으로 나아가는 통치 질서를 상징했습니다.
동십자각은 이 네 개의 십자각 중 동쪽 지점에 위치하며, 특히 종묘로 향하는 행차와 제례 행렬이 반드시 통과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거리의 교차점이 아니라 왕실과 백성, 궁궐과 제사, 길과 의례가 만나는 국도의 중심점이었던 셈입니다.
지금은 차량이 오가는 로터리 한복판에 섬처럼 남겨져 있지만, 원래 이 공간은 사람이 걷고 머물며 신성한 의례를 지켜보던 장소였습니다. 조선시대 지도에 따르면 이 일대에는 도로 외에도 행렬을 지켜보는 시전행랑과 제사 준비를 위한 부속 공간들이 즐비했으며, 일정한 거리마다 제례용 횃불을 밝히는 구조도 있었습니다.
동십자각에서 종묘까지 이어진 왕실 제례의 길
조선은 유교적 질서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했으며, 왕실의 제사는 국가 운영의 중심이었습니다. 그중 종묘 제례는 선왕에 대한 가장 중요한 국가 의식으로, 제례를 행하는 날이면 왕과 신하들은 창덕궁 또는 창경궁에서 출발하여 종묘까지 이동하는 의전 행렬을 진행했습니다.
이 길은 지금의 ‘율곡로’나 ‘종로3가’로 알려진 도로지만, 원래는 국가의례를 위한 제례 도로였습니다. 동십자각은 바로 그 길의 시작점이자 중심이었고, 종묘는 그 끝이자 목적지였습니다. 특히 왕이 종묘에 직접 가서 제례를 올릴 경우, 이 길을 따라 가마가 움직였고, 도로 좌우에는 신하들과 백성들이 무릎 꿇고 왕을 맞이했습니다.
이때의 거리 풍경은 지금의 차도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길 양쪽에는 깃발과 악대, 의장대가 줄지어 서 있었고, 동십자각에는 제례 행렬의 흐름을 조율하는 관청이 임시로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곧 의전의 전개 공간이자 백성의 눈앞에서 국왕의 신성성을 드러내는 국가 무대였던 셈입니다.
지금은 그 길이 대부분 차량 전용도로로 바뀌고, 도보 이동 자체가 쉽지 않은 교통 중심지로 전락하면서 시민 누구도 이 길의 역사적 의미를 실감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도시 개발로 사라진 제례의 공간
대한민국 근대 도심 개발 과정에서 서울은 빠르게 현대화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왕실 제례와 의전이 이루어졌던 거리 구조는 철저히 해체되었습니다. 특히 20세기 중반,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대로를 정비하면서 동십자각과 종묘 사이의 공간은 ‘차량 흐름 위주의 도시 구조’로 완전히 재편되었고, 역사적 의미를 담은 ‘공간적 거리’는 지워졌습니다.
종묘와 동십자각은 지금도 도보로는 쉽게 연결되지 않습니다. 보행로는 끊기고, 도로는 확장되었으며, 옛 거리 구조를 상기시킬 수 있는 안내판조차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동십자각은 교통섬처럼 홀로 남아 있고, 종묘 역시 정문이 도로에 묻혀버려 원래의 제례 도로 방향과 어긋난 구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도시 미관의 손실을 넘어서, 국가 의식의 공간이 시민의 삶에서 단절되었다는 점에서 훨씬 더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서울의 중심부, 그것도 문화재 보호구역 한복판에서조차 역사와 도시 구조가 분리된 채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은, 도시의 정체성 회복이라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동십자각과 종묘 사이가 갖는 상징적 가치
서울이라는 도시는 궁궐, 종묘, 성곽이 하나의 체계로 연결된 ‘도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그 가운데 동십자각과 종묘 사이의 거리는 왕권, 의례, 행정, 시민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조선 한양의 심장이었습니다.
왕이 종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이동하던 길, 신하들이 임금의 위엄을 눈으로 확인하던 자리, 백성들이 무릎 꿇고 국왕의 행차를 맞이하던 거리. 이 모두가 현재의 동십자각과 종묘 사이에 있었습니다. 이 구간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로서의 길이 아니라, 조선의 통치 철학과 도시 구조가 집약된 정신적 통로였습니다.
더불어 동십자각은 도심 교차로이자 의례 공간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서울이라는 도시의 ‘접점’을 상징적으로 시각화한 구조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도로 체계, 교통 신호, 지하철 출입구 등은 이런 공간의 정체성을 철저히 지우고 있으며, 시민에게 역사적 맥락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복원 노력과 과제
다행히 최근 서울시는 동십자각~종묘 구간의 역사 복원을 위한 다양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 서울시는 이 구간을 포함한 종묘 앞 도로 일부를 왕실제례로(가칭)로 지정하고, 장기적으로 제례 행렬 재현, 보행자 중심 거리 조성, 역사교육 콘텐츠 강화 등의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실제로 2023년 봄, 서울시는 ‘종묘 제례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제한적이나마 왕실 제례 행렬을 재현하는 퍼레이드를 진행했고, 동십자각을 거점으로 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이 구간이 원래 제례의 공간이었다는 도시 설계적 복원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아직까지는 이 공간에 대한 시민 인지도가 낮고, 관련 안내판이나 공간 설계가 부족한 편이지만, 꾸준한 역사 복원 프로젝트와 교육 콘텐츠 연계가 이루어진다면 이곳은 다시 한 번 서울의 역사 중심축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울 숨은 역사 장소로서의 결론과 의의
‘서울 숨은 역사 장소’라는 큰 주제 안에서 동십자각과 종묘 사이의 거리는 상징성과 실재성을 모두 지닌 결정적인 장소입니다. 도심 한복판이라는 입지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관심에서 소외되었고, 도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기억이 절단된 채 방치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거리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도시의 심장부에서 역사와 일상, 문화와 제례가 만나는 복합적 공간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며, 서울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공간을 과거의 길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기억을 현재의 도시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방식으로 ‘기억의 길’을 다시 걷게 하는 일입니다. 동십자각과 종묘 사이, 사라진 그 거리의 기억은 우리 도시가 어떤 철학과 정체성 위에 세워졌는지를 말해주는 가장 조용하지만 깊은 목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