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엔 ‘180도에서 20분’이라고 했는데, 왜 저는 매번 다르게 나올까요?
이 글은 ‘베이킹 인포랩’ 시리즈 서른 번째 편입니다.
많은 홈베이커들이 베이킹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레시피에 적힌 온도와 시간대로 정확하게 구웠는데, 왜 나만 실패할까요?” 오븐을 180도로 맞췄고, 타이머를 20분으로 설정해서 딱 맞춰 꺼냈는데 쿠키는 바삭하지 않고, 케이크는 속이 덜 익어 있거나 마르는 일이 발생합니다. 심지어 같은 반죽으로 다시 구워도 결과는 매번 다르기도 하죠. 이런 혼란은 단순한 실수 때문이 아니라, ‘180도에서 20분’이라는 문장이 담고 있는 전제 조건을 잘 모른 채 그대로 따라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왜 레시피대로 구웠는데도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지, 그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접근해야 더 안정된 베이킹을 할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풀어보겠습니다.
온도는 설정값일 뿐, 오븐 내부의 실제 온도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가정용 오븐에 온도를 설정하면 화면에 숫자가 표시되고, 예열 완료 알림이 울립니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오븐이 180도에 도달했다”고 믿지만, 실제로 오븐 내부는 설정값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오븐의 센서는 특정 지점의 온도만을 측정하며, 그 위치는 보통 오븐의 상단이나 측면에 있습니다.
즉, 설정한 온도는 오븐 전체가 아닌 센서 근처 한 부분의 온도일 뿐이며, 반죽이 들어갈 실제 위치, 예를 들어 오븐 중단 선반 위의 온도는 여전히 165도 수준일 수 있습니다. 특히 오븐의 크기, 브랜드, 연식에 따라 온도 분포는 천차만별이며, 같은 180도라 해도 열선의 강도나 팬의 위치에 따라 체감되는 열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실제로 ‘베이킹 인포랩’에서는 동일한 반죽을 같은 시간, 같은 설정 온도에서 여러 브랜드의 가정용 오븐으로 나눠 구워보았을 때, 표면 색과 굽힘 정도, 식감의 차이가 매우 크게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는 ‘180도’라는 숫자 자체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오븐 구조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야 하는 상대적인 조건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20분’이라는 시간은 정확한 기준이 아닌 경험적 가이드입니다
레시피에 적힌 ‘20분’이라는 시간은 해당 레시피를 만든 사람이 그 반죽을 그 오븐에서 구웠을 때 가장 이상적이었던 시간입니다. 따라서 시간 또한 오븐 환경, 반죽 온도, 팬의 재질, 팬의 두께, 재료의 상태 등 수많은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반죽이 실온에 오래 두어 따뜻한 상태였다면 굽는 시간이 짧아질 수 있고, 반대로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차가운 반죽이라면 내부 온도가 낮기 때문에 익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습니다. 또한 두꺼운 팬은 열 전달이 느려 시간이 길어질 수 있고, 어두운 팬은 열을 빨리 흡수하므로 표면이 더 빨리 익을 수도 있죠.
이처럼 굽는 시간은 변수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되어야 하는 값이며, ‘절대 기준’으로 받아들이면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초보자일수록 레시피의 시간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중간에 제품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조절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반죽의 양, 온도, 밀도도 굽힘 결과에 큰 영향을 줍니다
같은 레시피라도 반죽의 양이 조금만 달라져도, 전체 굽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두께가 두꺼우면 당연히 속까지 익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반대로 너무 얇으면 표면만 익고 속은 덜 익는 상태로 끝나기 쉽습니다.
반죽의 온도 역시 중요한 변수입니다. 차가운 버터를 사용했는지, 실온에 얼마나 뒀는지, 계란이 냉장 상태였는지 여부에 따라 반죽 전체의 온도가 달라지고, 이는 굽는 시간에 직결됩니다. 반죽 온도가 낮으면 익는 데 더 오래 걸리며, 표면과 내부의 익힘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또한 밀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 바나나나 고구마, 단호박처럼 수분이 많고 무거운 재료가 포함된 반죽은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있어 같은 시간으로는 속까지 완전히 익히기 어렵습니다. 밀도가 높으면 열이 내부로 천천히 전달되기 때문에, 같은 오븐에서 같은 설정으로 구워도 내부가 익지 않거나 중심이 꺼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팬의 재질과 색상, 높이도 시간과 온도 체감에 영향을 미칩니다
팬은 단순히 반죽을 담는 용기가 아닙니다. 팬의 재질과 색상, 높이는 오븐 안에서 열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두운 팬은 열을 더 빨리 흡수하고, 밝은 색의 팬은 천천히 열을 받아들입니다. 이로 인해 어두운 팬에서는 표면이 빠르게 갈색으로 변하고 바닥이 쉽게 탈 수 있으며, 반대로 밝은 팬은 굽는 시간이 길어져 속까지 익히는 데 더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팬의 재질이 알루미늄인지, 스틸인지, 실리콘인지에 따라도 열 전달 속도는 전혀 다릅니다. 알루미늄 팬은 열 전달이 빠르기 때문에 시간이 짧아도 표면이 잘 익지만, 실리콘 팬은 열을 천천히 전달하므로 겉은 익었는데 속은 묽은 상태로 남을 수 있습니다.
팬의 높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깊이가 깊은 팬은 반죽이 두껍게 담기기 때문에 중앙까지 열이 도달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며, 얕은 팬은 반죽의 표면적이 넓어져 상대적으로 빨리 익습니다. 이처럼 팬은 온도와 시간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게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입니다.
오븐 내부의 선반 위치에 따라 열 전달이 달라집니다
레시피에서 ‘중단’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지만, 모든 오븐의 선반 구조가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일부 오븐은 3단으로 되어 있고, 어떤 제품은 5단으로 되어 있어 중단이라고 해도 위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열선의 위치에 따라 어느 쪽에서 열이 더 강하게 올라오는지에 따라서도 익힘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반죽을 너무 아래에 두면 바닥이 빨리 익고 윗면은 아직 부풀기 전 마르게 되고, 반대로 위쪽에 두면 윗면은 금세 갈색이 돌지만 속은 아직 덜 익은 채로 남을 수 있습니다. 중간 선반이라고 해도 팬 높이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위쪽에 더 가깝거나 아래쪽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시간과 온도 조절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심지어 일부 오븐은 열 분포가 일정하지 않아 한쪽만 갈색이 짙게 나오고 반대쪽은 연한 색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중간에 오븐 팬을 돌려주는 등의 조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오븐은 각자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오븐 성향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레시피 그대로’라는 말에는 수많은 조건이 생략돼 있습니다
레시피를 작성한 사람은 본인이 사용한 오븐, 반죽 양, 팬, 재료 상태, 실내 온도 등 모든 요소를 바탕으로 시간을 정했지만, 그 모든 조건이 동일한 환경에서 구워지지 않는 이상 똑같은 결과가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80도에서 20분’이라는 문장은 하나의 참고 기준일 뿐, 절대적 기준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조정이 필요한 값입니다.
그래서 실제 베이커들은 중간에 반드시 상태를 확인하고, 온도와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절하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반죽이 퍼지는 속도, 표면의 색 변화, 오븐 안에서의 부풀기 진행 상황 등을 체크하면서 굽는 방식이야말로 진짜 베이킹의 시작입니다.
레시피를 신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오븐과 재료의 상태, 팬의 조건을 알고 그에 맞게 조절하는 능력입니다. 경험을 쌓아가면서 점점 이 조절의 감각을 익히면, 어떤 레시피라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도 높게 재현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