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를 실온에 얼마나 둬야 할까요? 녹았다고 실패일까요?
이 글은 ‘베이킹 인포랩’ 시리즈 스물네 번째 편입니다.
베이킹 레시피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실온에 둔 버터를 사용하세요.”라는 지침인데요. 하지만 이 말은 생각보다 추상적입니다. 어느 정도를 실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30분일까요, 2시간일까요? 그리고 너무 오래 두어서 버터가 녹아버렸다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는 많은 베이킹 실패가 ‘재료 혼합’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버터의 상태는 결과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온 버터의 적정 상태와, 그 상태에 따라 반죽에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실온 버터는 ‘말랑하지만 형태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실온에 둔 버터’라고 하면, 단순히 차갑지 않게만 두면 된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온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용 가능한 상태는 아닙니다. 베이킹에서 이상적인 실온 버터란, 겉은 말랑하지만 중심은 형태가 유지된 상태, 즉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부드럽게 들어가되, 완전히 무르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버터가 너무 딱딱하면 설탕과의 크림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반대로 너무 묽으면 섞는 과정에서 공기를 머금지 못해 결과물의 부피가 줄어들고 식감도 달라질 수 있어요.
온도계를 사용해 관찰해본 결과, 가장 이상적인 버터 상태는 약 18~21도 사이였습니다. 이 온도에서는 버터가 설탕과 만나 부드럽게 풀리면서도, 공기를 적절히 포집할 수 있는 점도가 유지됩니다. 만약 손으로 눌렀을 때 쉽게 무너지거나 액체처럼 퍼진다면, 이미 이상적인 실온 상태를 지나친 것이며 크림화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절과 실내 온도에 따라 ‘실온’은 달라집니다
버터를 실온에 몇 분 두면 된다, 몇 시간 두면 충분하다는 조언은 절대적 기준이 되기 어렵습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여름과 겨울, 습도가 높은 날과 낮은 날, 창가와 그늘 등 환경에 따라 버터의 상태는 전혀 다르게 변화하기 때문이에요. 겨울철 실내가 15도 미만일 경우 2시간을 두어도 겉면만 약간 부드러워질 뿐 중심은 여전히 딱딱한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여름에는 30분만 두어도 겉부터 녹아내려 내부까지 흐물해질 수 있죠.
‘베이킹 인포랩’ 실험에서는 동일한 냉장 버터를 22도 실내에서 30분, 1시간, 1시간 30분씩 꺼내 두었을 때의 반죽 결과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1시간 10분 전후가 가장 크림화가 잘 이루어졌고, 그 이상에서는 반죽이 묽어져 설탕과 버터가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시간보다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정적인 베이킹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버터가 너무 녹은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은 추천되지 않습니다
간혹 베이킹 중 실수로 버터를 너무 오래 두거나, 전자레인지로 빠르게 실온화하려다 완전히 녹아버린 버터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겉보기에 크게 문제없어 보여도, 이미 크림화가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반죽에서 공기 포집이 일어나지 않고, 결과물의 부피가 현저히 낮아지며, 식감은 단단하고 축축한 형태로 바뀝니다. 특히 쿠키나 파운드케이크처럼 크림화법을 사용하는 레시피에서는 버터의 상태가 전체 반죽의 기초 구조를 좌우하기 때문에, 녹은 버터를 쓰는 것만으로도 전체 질감이 완전히 바뀌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요.
같은 레시피로 냉장 버터, 적정 실온 버터, 완전히 녹은 버터 세 가지를 사용해 비교 실험을 했고, 녹은 버터 반죽은 섞을 때는 수월했지만 굽는 과정에서 퍼지고 납작해졌으며, 중심도 촉촉함보다는 퍽퍽함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급할 경우에는 버터를 중탕으로 살짝만 데워 말랑한 상태로 조절하되, 액체 상태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크림화가 실패하면 전체 식감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버터와 설탕을 섞는 크림화 단계는 단순히 섞는 작업이 아니라, 베이킹에서 공기를 반죽에 포함시키는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공기를 품지 못하면 부풀기 자체가 약해지고, 표면은 빨리 익지만 중심은 질고 무거운 식감이 될 가능성이 높아져요. 실온 버터가 이상적일 경우 설탕과 잘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하얗고 부드러운 크림 상태가 되며, 이 구조는 이후 밀가루나 계란을 넣을 때 반죽 전체에 안정적으로 공기를 유지하게 도와줍니다.
반면 버터가 너무 딱딱하면 설탕이 흡수되지 않고 덩어리로 남게 되고, 너무 묽으면 기포가 사라지며 유지방과 수분이 분리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웠을 때 겉면은 딱딱하게 익고, 속은 쳐지거나 눅눅해지며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즉, 실온 버터 상태는 단순한 편의 조건이 아니라, 제품 전체 구조의 출발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죽 전 버터 상태를 테스트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실온 상태 판단이 어려울 땐 손가락 테스트와 절단 테스트를 활용하면 좋습니다. 먼저 손가락으로 버터를 살짝 눌렀을 때 부드럽게 들어가되, 물처럼 흘러내리지 않으면 적당한 상태입니다. 또한 버터를 칼로 잘랐을 때 표면이 깔끔하게 잘리고, 단면에 물기가 보이지 않으면 기름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뜻이므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실온 버터를 기준으로 직접 절단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중심까지 일정하게 말랑한 경우가 가장 좋은 크림화를 보여주었고, 중심이 단단하거나 겉면이 눅눅한 경우에는 크림화 과정에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설탕이 덜 흡수되는 문제가 반복됐습니다.
이러한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굳이 온도계를 쓰지 않더라도, 실온 버터 상태를 매번 감각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면 베이킹의 실패 확률은 훨씬 낮아집니다.
실온 버터의 ‘감’은 결국 반복 속에서 길러집니다
베이킹은 정량의 과학이지만, 그 안에는 감각적인 판단이 필요한 순간이 존재합니다.
실온 버터 상태는 매번 온도계로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만의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해요. 한두 번의 실패를 겪더라도, 손의 느낌, 칼의 저항, 반죽의 상태를 관찰하면서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환경에 맞는 ‘실온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생깁니다.
‘베이킹 인포랩’ 시리즈에서도 강조하는 부분은 ‘절대 정답’이 아니라 ‘흐름의 기준’입니다. 버터를 꺼낸 시간, 실내 온도, 손의 감각, 반죽의 반응을 매번 조금씩 기록해보세요. 그 누적이 여러분의 베이킹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줄 거예요.